사위 삼는 올무작전
성경을 자세하게 읽지 않고 대충 읽었을 때 가졌던 생각 중 하나.
비열하게 충성스런 장군 우리아를, 전사를 가장해서 죽인 다윗보다는 사울이 인간적으로 훨씬 매력적이지 아니한가?
오랜 시간 팩트체크 결과.
내 생각을 바꿨습니다.
생각을 바꾸는 회개, 그것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만나기 전에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게 된 여러가지 이유가 있거니와,
다윗을 만난 후에도 지도자로서는 마음의 크기나 생각의 깊이가 한참 모자랍니다.
사무엘이 오기까지 기다리지 못한 조급함.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금하신 것을 너무 쉽게 넘나드는 습관성 금도 넘기.
제사를 집례하는 교만과,
진멸하라는 말씀을 거역하고 임의로 취사선택하는 불신앙.
무엇보다도 가장 큰 죄와 잘못은?
이런 모든 실수와 죄들을 지적 당하고도 진솔한 회개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진실한 회개야말로 가장 큰 은혜요 축복이거늘!(행 3:19, 요일 1:8-10, 시 34:18, 시 51:10,17)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한 비극인생 되지 말지어다.(히 12:17)
면피용 립서비스는 있었거니와 마음의 중심에서 일어난 회개가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베들레헴 목동 다윗을 선택하셨으리라.
다윗을 만난 후에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성경을 액면 그대로 읽어보면, 수금치료의 역사를 경험하고서도 다윗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사울의 진면목.
사람을 대충 보고 넘어가는 가벼움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골리앗을 물리친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는 공언을 손바닥처럼 쉽게 뒤집습니다.(삼상 17:25, 삼상 18:19)
나는 과연 내가 한 말이나 약속에 얼마나 신실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실의 무게는 언제나 주님의 신실하심과 연결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리니.(롬 2:24, 고전 10:32-33)
맏사위를 삼겠다는 약속을,
복잡한 속내로 안지키고서는,
또다시 둘째 사위를 삼겠다고 올무작전을 폅니다.
차도살인지계.
남의 칼을 빌어서 껄끄러운 사람을 제거하려는 고도의 전략.
속된 말로 손 안 대고 코 풀기.
내 손에 피 안 묻히고 껄끄러운 사람 제거하려는 것이 둘째 사위로 삼겠다는 올무작전이었습니다.
블레셋 남자들의 포피 백개.
전쟁을 가장해서 은근히 전사하기를 바라는 올무작전은 보란듯이 땡.
블레셋 남자들의 포피 백개의 갑절인 이백개를 바치는 전과를 통해서, 사울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고 알며 다윗을 두려워하게 하십니다.(삼상 18:28-29)
결과적으로 다윗은 사울의 올무작전으로 오히려 혁혁한 전과를 올립니다.
사울의 다른 신하들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고 전과를 올려서 큰 명성을 얻고 리더십을 인정받게 됩니다.(삼상 18:30)
이쯤해서 롬 8:28절 말씀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사울은 사위 삼는다는 올무작전으로 다윗을 죽이려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다윗의 리더십을 인정받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힘씁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늘 분별하며 그 뜻을 이루며 살려고 애를 씁니다.
오늘도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