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인을 어이할꼬?
개혁자 루터의 공로를 말하자면, 종교개혁의 축복을 누리고 사는 기독교인으로서는 루터에게 빚진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면 루터의 주장은 모든 것이 옳을까요?
루터의 가르침이 세계 교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공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만인사제설"입니다.
타락한 사제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교회를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입니나만,
너도 나도 사제라고 나서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사이비와 이단들이 출몰케 되는 통로(?)가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에도 사이비와 이단은 있었습니다.
갑자기 "만인사제론?"
여호수아 21장에 기록된 레위 지파가 받은 기업(?)을 보니 루터가 주창한 만인사제론이 오버랩되면서 레위지파에 해당되는 역할을 감당한 목회자라는 직분을 새삼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사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을 정복하고 기업을 분배하는 과정에 여기저기서 레위인에게 줄 분깃 즉 몫에 대해서 언급합니다.(수 13:14, 13:33, 14:3-4, 18:7 그리고 21장)
짧게 언급한 말씀이지만 레위인에 해당하는(?) 목사의 소명으로 살았기에 눈에 띄었으리라.
내 문제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는 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기업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기업을 삼은 레위인에 대한 배려를 여기저기서 간단하게 언급하다가 21장에 집중적으로 기록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씀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갈 6:6, 신 33:8-10)
모든 지파가 자기들이 받은 기업에서 레위인을 위해 일정한 몫을 내어 놓은 것처럼 오늘 교회에서도 목회자에 대한 적절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0.1퍼센트도 되지 않는 대형교회 목사들의 사례를 한국교회 목사들의 일반적인 것처럼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들(?) 덕에,
대부분 세금 조차 뗄 것이 별로 없는 사례비로 연명하는 목사들이 세금도 안내고 국민된 의무조차 외면하고 무임승차하는 파렴치한 사람들로 매도된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각설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빼고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모든 좋은 것에 돈도 마땅히 포함되어야 합니다.
목사는 소명으로 살고,
교회와 성도는 자기가 대접을 받고 싶은 만큼 대접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내가 목사라면 얼마나 받는 것이 좋을까?
내 자식이 목회를 한다면 어떤 대우를 받기를 원할까?
가끔 주님의 것을 아낀다는 미명으로 목사의 사례비에 인색한 사람들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헤아리는 대로 헤아려 주시리라.(눅 6:38)
목사에게 인색한 것을 주님의 것 절약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고,
남의 떡이나 잔치에서라도 인심 쓰는 지혜로운 손길이 되시기를.(눅 16:8)
이런 묵상도 은퇴하고 자유하니 나누는 것입니다.
소명 43년,
목회 40년,
담임목사 25년을 섬기면서,
사례비 언급 없이 살기로 결심하고 지켰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배려한 교회와 손길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인색한 손길 보다는 후한 마음들이 오래도록 감사로 기억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