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레위인, 어떻게?

전주산돌 2021. 12. 19. 22:43

"다수의 수다"라는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종교인 편을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왜? 
나도 종교인이니까!

목사, 스님, 신부 그리고 원불교 교무 네 분이 나와서 2명의 MC와 함께 각종 주제로 수다를 떨고,
그중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편집해서 내보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원불교 교무께서 교무가 된 것에 대한 고백을 들으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길이 달라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청소년기 방황할 때 학교 선생님이신 원불교 교무를 만나 위로를 받고 방황을 정리하고 "나도 이런 삶을 살아야 되겠구나"결심하고 마침내 교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는 어렵겠지만, 어떤 사람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어야 하리라.(고후 2:15-16)
그러라고 구원하시고 은혜를 주셨으니까요.

신명기 18장은 레위인과 제사장의 몫에 대한 교훈과(신 18:1-8),
가증한 것에 대한 단호한 배척(신 18:9-14),
모세 이후 선지자를 보내신다는 약속을 합니다.(신 18:15-22)

성경 곳곳에 제사장과 레위인에 대한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더구나 레위인은 객과 고아 그리고 과부와 함께 등장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동안 수십년 성경을 묵상하고 설교했지만 스쳐 지나칠 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곰곰히 묵상해봅니다.

아하!
그런 까닭이었구나.
그래서 반복해서 기록하고,
반복해서 함께 등장하는 것이로구나.

선민 이스라엘이 레위인이 받아야 할 응식이나 분깃을 제대로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반복해서 기록하고 강조할 까닭이 없지 않겠습니까?

오죽하면 객과 고아 그리고 과부와 동렬로 기록하고 돌보라 하셨겠습니까?

"다수의 수다"를 시청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어쩌면 저렇게 멋지게 설명할까!"
고개를 끄덕이고 속으로 박수치며 화답한 장면이 있습니다.

종교인 각자의 신분에 대한 자리매김이었는데 기가 막힐 만큼 정확한 진단과 평가였습니다.

목사는 자영업자.
신부는 직영점.
스님은 프랜차이즈.
교무는 직영점에 이중직 허용.

다소의 반론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각자 받을 만큼만 받으시고,
아니라면 거부하면 될 터.

자녀를 목회자로 둔 교우들에게 기회만 주어지면 부탁했습니다.
내 아들이나 딸,
혹은 사위나 며느리가 받았으면 좋겠다 싶은 존경과 사랑 그리고 대우를 교역자나 교회 직원에게 해주십쇼.

부탁은 했지만 결과는 별로 신통치 못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선민 이스라엘이 레위인을 대한 것과 비슷하리라.

내 자식이 받기를 바라는 만큼 부교역자나 교회직원에게 우대하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요?
아마 손가락으로 꼽아야 되지 않을까요?

부족한 사람을 들어 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거니와 사람은 최선을 드려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만큼 교회직원이나 교역자들을 최대한 우대하려는 태도가 복 받을 자세입니다.

마치 내가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가난과 어려움으로 연단시키려는 태도는 교만의 다른 모습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명과 돈을 연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소명을 받고 순종하여 일생을 목회에 헌신하려는 사람을 인정하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리라.

레위인 자신은 변하는 세태를 잘 분별하고 지혜롭고 순결하며 삼가서 뒷모습이 초라하지 않도록 스스로 준비하고 레위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벧전 4:7-11)

교우들은 어떻게?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며 믿음의 가정과 레위인에게 선을 행할 때 심는대로 거두시리라.(갈 6:6-10)

기왕이면 원망 없이 소명을 감당하도록 최선의 예우를 하는 것이 복 받을 일.(벧전 4:9, 시 37:25-26, 히 13:17)

주님께서 강조하신 황금률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2021년 12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