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임을 벗고서
목사로 살아온 인생을 정리할 때.
소명 43년.
목회 40년.
담임 25년.
출애굽기 29장은 제사장 직분 위임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론의 후손이 세습했던 제사장직 위임을,
오늘날 목사 세습(?)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정신 없는 사람도 있으니 이를 어찌할꼬?
아브라함처럼 일부다처를 주장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터인가?
무릇 성경적이라 함은 성경에 기록된 문자대로가 아니고 성경에 면면히 흐르는 정신과 가치를 잇고 현실화하며 물려주는 것이거늘.
아무튼!
위임은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감당하도록 책임과 권한을 맡기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아론가문이 세습했고,
오늘 교회시대는 소명을 받은 사람이 일정한 교육과 훈련을 받고 청빙절차를 거쳐서 위임을 합니다.
물론 이부분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분별력과 겸손과 기도로 이런 과정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불행한 결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제 자신 소명인생을 돌아보면 드러나고 시비된 허물과 문제보다는,
감춰지고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았으니...
이것조차 은혜라 말해야 되는 것인지 헷갈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위임목사로 위임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는 은혜로 인식하고 겸손하게 선한 일꾼으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충성을 다하여야 하리라.(롬 13:1-7, 고전 4:1-5, 벧전 4:10-11)
뿐만아니라 즐겁게 소명을 감당하며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벧전 5:1-7)
목사가 명심할 것은?
권위나 리더십은 능력과 성실함 그리고 인격과 실력을 포함한 영성에서 나오는 것이지,
목사라는 직분과 위임이라는 칭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목회자가 바로 이부분에서 실패합니다.
겸손하고 인내하면 그나마 다행일텐데,
오히려 남탓을 하고 권위주의를 내세워 분쟁하다가 주님의 몸된 교회가 어지러워집니다.
기도와 말씀, 분별력과 독서, 겸손한 인격과 영력.
이런 것들에서 뒤쳐지고 싶으면 목사직을 벗는(?) 것이 좋습니다.
목사 말고도 호구지책이(?) 얼마나 많은 세상입니까?
아무리 양보해도 이부분에서 함량미달이면 억지가 나오고 권위주의로 흐르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대체적으로 교회공동체의 분열과 목회자 개인의 상처로 점철됩니다.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왜 빨리 은퇴를 했느냐고?
어찌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조금 덜 책망하실 것 같은 시간을 선택했고요.
그나마 큰 흠(?)이나 실수가 드러나기 전에,
아름다운 뒷모습을(?)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3년 더 설교하기 보다는,
먼 훗날 피차 돌아보더라도,
멋진 교회요 좋은 성도들이었다고.
그리웁고 존경할만한 목사였다고.
위임을 벗으면서 마지막 바람이었습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