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안식년과 안식일의 축복

전주산돌 2021. 9. 16. 09:33

목회여정 40년에 가장 잘한 일을 말하라면, 담임목회를 25년 하면서 두번의 안식년 휴가를 가진 것과 세번째 안식년이 될 때쯤 3년 조기은퇴를 결심하고 실행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세번의 안식을 누린 셈입니다.

좋은 교회를 섬긴 덕이지만, 모두가  환영하고 박수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안식년이 어디 있냐는 둥(?) 비아냥대고 뒷담화를 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식년을 가져야겠다는 저의 의지가 워낙 강했기에, 면전에서 반대는 못하고 뒷담화로 이러쿵저러쿵 하셨을 뿐입니다.

그 덕에 두번의 안식년 축복을  누리고 목회여정을 잘 마칠 수 있었으니, 앞에서 대놓고 반대하지 않으시고 뒷담화로 그쳐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꾸벅!

목회 선후배들이나 목사 친구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면, 거의 대부분 목사들이 새벽부터 시작되는 목회활동에 지치고 탈진하여 병들거나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후회와 넋두리로 목회를 마치지 않으려고 다소 강경하게 안식년 휴가를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사람 좋은(?) 장로님들 덕분에 큰 물의 없이 안식년의 축복을 누리고 힘차게 목회에 정진하다가 마음으로 정한 때에 은퇴 할 수 있었으니 어찌 감사하고 찬양하지 않으리요?

은퇴 후에도 변함없이 묵상을 나누고 경건을 유지하는 힘과 여유를 갖는 것도 모두 철저한(?) 안식의 축복을 누린 덕입니다.

출애굽기 23장 앞부분은 하나님의 공의실현에서 최후의 보루인 재판을 언급합니다.

뒷부분에는 유대인의 3대 명절인 유월절과 연결되는 무교절과, 오순절과 통하는 맥추절, 
그리고 장막절이라고 불리우는 수장절을 지킴으로 언약백성의 축복을 누릴 것을 강조합니다.

오늘은 앞뒤에 기록된 것은 다음 기회로 넘기고 중간에 기록된 안식년과 안식일의 축복을 묵상합니다.

안식년.
생명 없는 땅조차 휴경하여 안식하게 하셨다면, 
하물며 생명유지를 위해 계속 활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하물며 피로사회라 일컬을 만큼 톱니바퀴 처럼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빈틈없이 살아가야 할 현대인이랴?

안식년과 안식일을 묶어서 묵상하면 땅도 사람도, 주인도 종도 심지어 짐승까지도 안식케 하라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살라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나를 주시면서 안식일의 축복을 교훈하셨습니다.(출 16장)

주님께서는 산상보훈에서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꽃도 입히시거늘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마6:25-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고 순종할 것이냐? 
아니면 믿지 못하고 내 맘이나 주변환경에 매여 살 것이냐?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실천여부와 그에 따른 결과 또한 언제나 선택한 사람의 몫입니다.

동갑내기 친구 중에 한 목사님은 만날 때마다 "죽고싶을 만큼 쉬고 싶어"하더니, 결국 안식년을 못누리고 조기은퇴를 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안식년을 누리고 싶을 때마다 교회(?)눈치 보다가 쉬지 못했는데,
결과적으로 한번은 큰 수술을 하고 또 한번은 입원했노라고 크게 아쉬워 했습니다.

안식년은 누려도 안누려도 항상 선택한 사람이 감당할 몫입니다.
물론 안식년 안했다고 하나님께서 병들게 하시거나 벌 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잘 새길 필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다음 안식년의 특권과 축복을 마다한 선민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70년을 마치고 고백한 뼈아픈 넋두리를(?) 확인하고 우리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고전 10:1-12)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대하 36:17-21)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