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습관까지
너무 늦은 시간에 방송하기 때문에 빠짐없이 시청하지는 못하지만, 개통령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전문가로서 개를 다루는 것을 볼 때마다 잠언 22:29절 말씀을 떠올립니다.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대부분 반려견의 문제는 그 개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개를 돌보는 보호자가 개에 대한 지식이 없이 그저 사랑(?)만으로 잘 못 기르는 까닭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될 뿐아니라 갈수록 선한 것을 분별하게 합니다.(빌 1:9-10)
그러므로 하나님께 사랑받아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교훈을 잘 분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롬 12:1-2, 고후 2:15-16)
출 21장은 종에 관한 법,
폭력에 관한 법,
그리고 가축화 된 짐승에 관한 법을 마치 대법원 판례처럼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종의 제도를 성경이 기록했다고 해서 오늘도 여전히 노예제도가 성서적(?)이라고 억지 주장하는 무지를 뽐내지는 말지어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던 지나간 시대에 잠시 허용(?)한 임시법을 영구불변한(?) 하나님의 뜻으로 제도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 것입니다.
한번 노예는 평생 노예로 사는 것이 일반화된 그 시대에,
육년 후에 자유케 하라는 종에 관한 법은 당시로는 가히 혁명적으로 진보한(?) 인권존중의 극치라 할 것입니다.(출 21:1-11)
인권과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각종 폭력에 대처하는 탈리오이즘은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범죄자 위주의 인권보호제도에서 사회질서와 선한 시민을 중시하는 인권보호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지시합니다.(출 21:12-27)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동해 보복법은 내 몸과 생명이 소중한만큼 다른 사람의 생명과 삶도 존중하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마 7:12)
마지막으로 나오는 소 주인의 책임에 관한 규례는,
반려동물이 일상화된 요즘 세상에서 구체적인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데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요점은 가축화 된 짐승의 습관까지 잘 단속하라는 것입니다.
짐승의 습관까지 잘 들이고 단속하라 하시거늘,
사람의 습관이야 더 말할 필요조차 없겠지요.
경건과 절제.
믿음으로 구원받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몸과 마음과 영혼에 반드시 붙여야 할 습관입니다.
다소 율법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신앙생활 덕에 음주와 흡연이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은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도박이나 마약 같은 악을 모양조차 버리고 산다는 것은 택한 백성이 자기도 모르게 누리는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살전 5:22)
소도 받는 버릇이 있거든 단속하여 그 버릇을 고치라 하시거늘.
개도 무는 버릇이 있다면 마땅히 단속하여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본다면 반드시 그 주인에게 책임을 묻고 댓가를 치르게 하라는 것입니다.(출 21:28-36)
불량 황소가 받는 버릇이 있다면 주인에게 반드시 단속에 대한 책임을 물으라는 것입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려거든 명심 또 명심하시라.
가축화 된 짐승조차도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에서 본능으로 살지 말도록 철저하게 책임을 물었거늘 하물며 사람이랴?(유 1:10)
음주가 실수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음주습관을 철저히 단속해야 합니다.
음주 경감법은,
음주 가중처벌법으로 반드시 바꿔야 할 악법입니다.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가 음주와 총기 그리고 마약과 에이즈 자살 약물중독사 그리고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을 모두 합친 수 보다 많다는 미국의 통계를 보더라도, 믿음 덕에 담배를 멀리하는 축복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축복인생입니다.
하나님께 복 받은 그대여!
오늘도 경건과 절제로 어깨를 쭈욱 펴시라!
ㅇㅇㅇ야!
오늘도 어깨 쭈우욱 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았으니까.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