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행을 두려워 말라
어린 시절 어머니는 자녀들이 화투놀이를 하는 것은 물론 화투를 만지는 것조차 엄금하셨습니다.
교육상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도가 지나친 것만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친구들 집만 가면 바로 화투를 만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집에서 화투란 아버지만 만지는 놀이기구였지 자녀들에게는 금물이었습니다.
초등 5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외가에 갔는데 저녁식사 후 마실을 가셨던 외할아버지가 금방 돌아오시더니 좀 못마땅한 표정과 신음소리를 내시며 자리에 누우십니다.
묘한 분위기에 놀라서 얼음왕자가 된 저에게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너희 할아버지는 볼 일이 있어서 이웃에 가셨다가도 거기서 화투치는 소리만 나면,
볼 일도 마다하고 말도 안섞고 돌아오신단다"
아니, 왜?
볼 일이 있으시면 이웃집에서 사람들이 화투를 치건 말건,
볼 일을 마치고 오셔야지 그냥 돌아오시는 거야?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만 묻기도 애매하고 어려워서 마당에 깔린 멍석에서 먹던 감자를 멈춘 저에게 할머니는 한마디 더 하십니다.
"너희 할아버지가 어렸을때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셨단다.
어린 그때 할아버지는 화투나 도박 같은 것은 평생 손으로 만지지 않겠다고 결심하셨단다"
그 여름밤 외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수십 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도박중독자들이 화투 섞는 소리나 카지노 기계음과 코인 떨어지는 소리에 미쳐서 집도 사업도 말아먹고 가족도 내팽개치고 폐인으로 전락하는 것이 즐비한 세상에서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큰딸로 태어난 어머니가 얼마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슴 깊이 새겨진 교훈이었을까를 생각하니 화투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질색팔색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외갓집에서 화투란 결코 만지거나 가지고 놀아서는 안되는 쥐약 같은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집에서 화투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어머니에게는 말 못할 갈등거리였으리라.
야곱에게 애굽이란?
우리 외갓집에서 화투 같은 존재였으리라는 것이 창세기 46장을 묵상하면서 번뜩 떠올랐습니다.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아내 사라를 바로에게 빼앗기는(?) 난처한 일을 겪었습니다.(창 12:10-20)
그래서인지 아버지 이삭은 흉년이 들어서 생각이 많을 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금지명령을 받았습니다.(창 26:2)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일과 아버지 이삭이 받은 명령으로 야곱에게 애굽이란 일종의 트라우마였으리라.
그래서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도 두려워 망설이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 말씀하십니다.(창 46:1-3)
애굽에서 번성케 하시마고,
애굽에 함께 내려가시고,
때가 되면 다시 가나안으로 인도하리라 말씀합니다.(창 46:4)
신실하신 하니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이루시려고 먼저 요셉을 보내셔서 자리잡게 하시고 연한 싹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번성케하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70명에서 60만으로!
그것도 4대 430년만에.
민족의 생존과 번영이 쉴새없이 반복되던 고대사회에서 애굽이라는 강대국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쉽지 않았으리라.
하나님의 언약성취는 우리의 생각이나 계산과는 다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에게 주시되 좋은 것으로 넘치게 주십니다.(마 7:7-11, 엡 3:20)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약성취라는 축복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이루실 때가 많습니다.
일마다 때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붙들려 약속된 축복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