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삶의 이중성
디도가 목회하던 그레데 교회는 물론 세상 곳곳에 흩어진 교회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식의 많고적음, 교양의 유무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를 단순하게 목회하면 탈이 나고 덜컹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리더십이 먹히게 됩니다.(고전 9:22-23)
딛 2장에는 늙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여자, 젊은 남자 그리고 종과 상전이 등장합니다.
그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딛 2:11, 딛 3:5, 엡 2:8-9) 그런데 은혜로 구원받았은즉 선한 일과 행위는 그리스도인에게 무용지물인 것이냐?
바로 이 선한 일과 행위라는 선한 삶에는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는 안 될 이중성이 있습니다.
구원은 십자가 대속이라는 은혜로 받는 것이 확실하나 바로 그 구원은 선한 일과 선한 행위를 위해서라는 분명한 목적 앞에 그리스도인들은 끝까지 겸손해야 합니다.(엡 2:10, 딛 2:5, 7, 10)
교회 안에 보면 교리는 정통인데 일과 행위 즉 삶은 이단인 사람이 있고,
반대로 교리는 이단인데 삶은 정직하고 진실하여 칭찬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주님께서 이렇게 탄식하셨겠습니까?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 16:8)
은혜로 구원받은 복음구원을 올바르게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일과 선한 행위가 필요한 까닭을 성경은 곳곳에서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목회서신인 디도서에서도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도에게 선한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선한 삶이 반드시 필요한 까닭을 반복해서 역설합니다.
선한 삶으로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딛 2 :5)
선한 일에 본을 보여 교훈이 부패치 아니함을 드러내라.(딛 2:7)
참된 신실성을 드러내서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라.(딛 2:10)
교리는 물론 일과 행위라는 삶에서도 이단 말고 정통신앙생활로 연결되어야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고(딛 3:7),
선한 삶을 사는 것이 아름답고 사람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딛 3:8)
오늘도 교리는 물론 삶에서도 주님의 친구로서 향기가 아름다운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요 15:13-14, 고후 2:15-16)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