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가버나움아, 네가?

전주산돌 2025. 6. 12. 10:24

성지순례 여정에서 가버나움을 들렀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거주지였으며(마 4:13),
예수님께서 활동했던 동네였으며(마 9:1),
많은 권능을 행하신 고을이었으며,
제자들은 물론 그곳 주민들과,
주님께서 함께 먹고 마신 곳입니다.(눅 13:26)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회당의 흔적은?

남아 있는 기둥 몇개와 벽들과 바닥만으로도,
주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다는 자유.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상상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은혜인 것을!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1:23-24)  

"너 가버나움아!"

권능을 많이 행하셨던 고라신과 벳세다를 책망하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만.

그런데 가버나움을 부르실 때는 결이 다릅니다.

"너 가버나움아"

"너"라는 단어가 원문에 함께 쓰였습니다.
부르시는 톤과 칼라가 달랐을 것입니다.

친밀감과 함께 복잡한 주님의 속내를 보여주는 호칭입니다.

로마의 황제 시저가 배신을 당해 죽으면서 외쳤다는 말. 
"브루투스, 너마저?"를 연상하게 합니다.

은혜가 다다익선이면,
책임과 사명 또한 많아야 마땅합니다.

 

축복이 다다익선이라면,
삶이나 행동거지 또한 빛나고 향기로워야 합니다.

주님과 가까운 사이라면?
주님과 가까웠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주님의 특별한 은총을 맛보아 알았다면?
특별한 은총을 맛 본 사람답게 처신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최대 덕목 중 하나는 겸손입니다.

주님의 덕목인 겸손이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합니다.(빌 2장)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겸손이 불신자를 주님께 인도하는 최고의 도구요 수단입니다.

그런데 한 때 주님과 조금 가까웠다고,
주님의 놀라운 은총을 약간 경험했다 해서,
우쭐대거나 교만하면?

그 교만은 바로 패망의 선봉으로 작동합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은혜 좀 받았다고 우쭐하면?
주님의 속내가 복잡하실 것입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심지어 소돔까지 거론하신 주님의 민망한 마음을 어찌하리?

소돔.
심판의 상징적인 지명.
불과 유황과 소금으로 뒤덮혀 사라진 도시.

 

염해 바다 밑에 소돔이 폐허로 남았을 것이라는,
호사가들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은?

우리도 몰래 소돔 심판의 무게를 긍정하려는 제스쳐가 아닐른지?

암튼 "너, 가버나움아"를 부르시면서,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말씀하신 주님의 복잡한 속내가,
반복되지 않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와 그대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너, 가버나움아!"라는 뉘앙스 말고,
"착하고 충성된 종아!"이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5년 6월 12일